강민석

Hello World👋.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독서

독서란 다른 사람이 생각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독자는 그저 작가의 사고방식을 따라간다.

글자 읽기를 독서라 생각한다면 이만큼 쉬운 건 없다. 작가가 조사하고 공부하여 정리한 결과물에 눈길만 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이 먹는다고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듯 많이 읽는다고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다. 독서가 고작 눈 운동이라면 책은 바보를 키우는 거름밖에 안 된다.

독서에 온종일 빠져 사는 사람은 점차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 과식이 소화를 망치고 건강을 해치듯, 과한 영양분은 정신을 질식시킨다.

책 좀 그만 읽으라는 조언은 드물다. 독서량이 지식과 비례한다는 환상에 억지로 책을 읽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당연하지만 책을 산다고 지식이 따라오는 건 아니다. 실제로 읽어보고 고민에 빠져야 하며 적당한 방식으로 소화해야 조용히 ‘아하’를 외칠 수 있다.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 유지되길 소망하는 건 먹었던 모든 음식이 뱃속에 남아있길 바라는 것과 같다.

독서는 이득과 손실이 함께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나 이 책 읽었잖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책을 읽고 무엇을 남겼는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분야든 중요한 책이 있다면 즉각 두 번씩 읽어야 한다.

한 번만 읽어도 되는 책은 버려야 한다. 전문적인 지식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투자법이든 물리학이든 유튜브 영상 하나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책을 다시 읽다 보면 새로운 밑줄을 긋게 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입시켜보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영감을 받기도 한다. 100번을 읽어도 101번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종이에 적혀진 생각은 모래 위 발자국과 같다.

글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해도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다. 독서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생각이나 삶을 존경한다면 발자국만 바라볼 게 아니라 직접 걸어가 봐야 한다.

바보를 위해 쓰는 글이 더 큰 대중을 만족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무한한 정보가 손끝에 있는 시대에 ‘불량 식품’을 구분하는 능력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 보인다.

쇼펜하우어는 대중이 열광하는 글을 비판적으로 판단한다. 작가, 출판사, 비평가가 한마음으로 원하는 건 ‘잘 팔리는 책’이니 ‘중요한 책’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실검에 오른 뉴스나 베스트 셀러는 ‘잘 팔리는 글’일까 ‘중요한 글’일까. 8:2 정도로 예측해보지만 사실 별 상관없다. 나만의 베스트 글 목록은 어차피 나밖에 모른다.

독서는 이렇게 하기로 한다.

독서에 정해진 정답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좋은 글을 구분하고 소화하는 기술이 있다면 책이 가진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하여 성장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독서 원칙을 단순하게 정리해본다.

  1. ‘잘 팔리는 글’은 읽지 말자.
  2. 천천히 그리고 적당히 읽자.
  3. 좋은 글은 두 번 이상 읽자.
  4. 글로 생각을 정리하자.
  5. 배운 점은 실생활에 적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