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요 육아 일기 1
고요가 태어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했던 생각...
- 은비(아내)는 자연주의출산을 했다. 링거, 무통, 절개, 관장 없이 온전한 진통을 느끼며 아이를 낳았다. 그날 우리는 친구들과 점심으로 콩국수를 먹고 멀티방에서 오버쿡을 때렸다. 정말 그날 아이가 나올 줄 몰랐다. 은비는 오버쿡을 하면서도 진진통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은비는 아파하면서도 ‘이게 진통이 맞아?’라고 물었다. 병원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은비는 어느새 걷기조차 어려워했다.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자궁문이 6cm나 열려있었다. 대단한 사람이다. 평생 존경하기로 다짐했다.
- 고요는 병원에 도착한 지 약 3시간 30분이 지난, 5월 6일 00:22에 태어났다. 병실에서 미리 준비한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여유와 설빈, 장기하, Cleo Sol, Tom Misch 노래가 흘렀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10월 10일이니 고요의 생일이 5월 5일이어도 괜찮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요는 간신히 5월 5일을 넘겨서 태어났다. 어린이날에 입원해서 어버이날에 퇴원하는 일정이었다.
- 양수가 터졌을 때 양수 색깔이 노랬다. “양수예요? 색깔이 노랗다면 안 좋다고 하던데.” 은비는 물었고 간호사는 자궁문이 다 열렸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그 순간 나도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진통 중인 은비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랑 은비가 건강하기만을 기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신에게 빌고 빌었다.
- 엄마 배 밖으로 나온 고요는 정말 조용했다. 엄마 옆에 누운 고요는 울지 않았다. 내 가슴 위에서 캥거루 케어를 할 때도 얌전했다. 양수 때문인지 조금 켁켁거릴 뿐이었다. 은비와 고요가 같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데 둘이 너무 닮아서 놀랐다. 고요에게서 은비의 모습이 보이고 은비에게서 고요의 모습이 보인다.
- 우리는 24시간 모자동실 후 바로 집으로 왔다. 모자동실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나름 공부했지만 실전에서 아이를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하는 것은 정말 달랐다. 고요가 배고픔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이틀이 지나고서야 조금씩 이해했다. 완전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으나 고요의 몸무게가 기준치 이상으로 줄어드는 추세가 보였기 때문에 보충수유를 할 수밖에 없었다.
- 첫 보충수유 40cc를 먹이는데 고요가 많이 배고팠는지 벌컥벌컥 젖병을 빨아댔다. 그 모습을 보는데 슬프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내 마음이 이랬는데 은비의 마음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요를 신생아실로 보내고 방 안에 둘만 남아 있는데 마음이 허전하고 울적했다.
- 지나고 보니 병원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의사 선생님부터 간호사님들까지 정말 친절하셨고 초보 엄마 아빠에게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우리가 서울에서 같은 조건으로 출산하려고 했다면 비용이 2~3배는 됐을 것이다(가격은 둘째치고 집에서 차 타고 10분 이내 거리에 이런 환경을 제공하는 병원이 있다는 것이 어딘가). 감사한 일이다.
- 우리집에서 고요와 일주일을 보냈다. 고요는 배만 부르면 잘 잔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만 하면 엄마 아빠는 걱정이 없다. 인간 삶이 별거 없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야지. 보충수유는 조금씩 줄이고 있다. 이제 고요는 모유만 먹고도 푹 잔다. 은비가 몸관리를 잘하고 공부를 많이 하면서 노력한 덕분이다.
- 육아 = 똥 + 오줌 + 비데 + 청소 + 목욕 + 맘마 + 트림 + 재우기 + 피부관리 + 사진찍기.
- 집에서 육아를 시작하면서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보니 (그러면 안 되지만) 예민해졌다. 출산을 마친 은비를 보살펴야 하는데 은비가 던지는 별거 아닌 말에 한 번씩 상처받고 화가 났다. 어제 저녁에 은비와 대화를 나누며 반성했다. 고요와 은비를 위해서라도 내 마음을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 “아빠가 된 소감은 어때?” 주변에 고요 탄생 소식을 전하면 이 질문을 받는다. 사실 잘 모르겠다. 아빠가 되었다고 사명감으로 가득 찬 것도 아니고 아기 울음소리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이는 것도 아니다. 고요가 찡얼대는 소리에도 옆에서 잠에 취해서 깨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요를 마주하고 있으면 그저 신비롭다. 아마도 내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가장 순수한 형태의 행복일 수도 있다.